2026년 5월 15일
당신 곁에, 당신 — 부산 오초량으로 마실 나온 제주의 신들

고복희가 이번에는 부산으로 갔습니다. 서울 통의동의 보안여관에서 열린 첫 번째 《젊은골동》에 이어, 두 번째 자리는 부산역 건너 초량동의 백 년 된 집 —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349호, 오초량이었습니다. 1925년에 지어져 백한 살이 된 이 집의 정원에, 고복희는 제주의 신들을 모셔왔습니다.
《젊은골동, 오초량 Young Antiques, Ochoryang》은 2026년 4월 23일부터 7월 5일까지 석 달간 열렸습니다. 이 글은 그 석 달의 기록이자, 제주에서 부산까지 함께 이동해 준 스무 분(엄밀히는 스무 점, 그러나 어쩐지 '분'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돌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堂神 當身 — 당신 곁에, 당신 · Always Beside You
젊은 골동이라는 실험
젊은골동은 골동을 유리장 안에 근엄하게 모셔두는 대신, 오늘의 감각으로 만지고 쓰고 경험하자는 젊은 상점과 컬렉터들의 실험입니다. 답십리와 인사동의 상인, 컬렉터, 큐레이션 브랜드들이 참여했고, 지난 3월 보안여관에서 열린 첫 전시는 단 이틀 동안 5백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며 이 실험이 혼자만의 취향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오초량에서는 방식이 더 과감해졌습니다. 관람을 회차당 열두 명으로 제한한 것인데, 인원을 줄인 이유가 근사합니다. 눈으로만 보지 말고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차와 다과를 곁들여 백 년 된 집에서 골동을 손에 쥐어보는 석 달 — 중앙SUNDAY와 부산일보, 월간도예가 잇따라 이 전시를 다룬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중앙SUNDAY의 기사 제목을 빌리면, "요즘것들, 옛것으로 통하다"였습니다.
정원을 보고 떠오른 기획 — 신들의 산책로
이번 전시에서 고복희의 자리는 오초량의 정원을 처음 마주한 순간에서 시작됐습니다. 백 년 된 집 마당을 가로지르는 길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 여기에 신들의 산책로를 놓아야겠다는 것. 그 생각을 따라 자연스럽게 두 개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당신 곁의 당신', 그리고 '위로'.
기획을 구체화하며 고복희가 불러온 것은 제주였습니다. 마을의 당집에서 주민들의 안녕을 보살펴온 무신(당신·堂神)상들 — 거칠고 민속적인 색채가 짙은, 조선 이후의 현무암 석물들입니다. 다소 강한 얼굴로 마을을 지키던 이 신들을 당집에서 부산 오초량으로 모시고, 백 년 된 정원에 신들의 산책로를 차렸습니다. 제주 밖으로는 좀처럼 나들이가 없던 신들의, 아마도 첫 단체 출장이었을 겁니다.
1만 8천 신의 고향, 제주
제주도(濟州島)는 '1만 8천 신의 고향'이라 불립니다. 과거 499개의 자연마을마다 주민들의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안녕을 보살피던 수호신, 곧 당신(堂神)이 존재했습니다. — 제주무신궁 발췌, 전시 소개문에서
제주에서 신은 먼 하늘의 존재가 아니라 마을마다 한 분씩 계시던 이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집에 모신 당신(堂神)에게 아이의 병을, 바다에 나간 가족을, 한 해의 농사를 맡겼습니다. 신의 이름 '당신'이 2인칭의 '당신(當身)'과 겹치는 것은 우연이지만, 이 전시에서는 그 우연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당신 곁에, 당신 — Always Beside You.

밭담머리 차씨할으방 — 밭담에 기대어 오가는 이들에게 무심한 듯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신
두려움을 얼굴로 깎다
우리 조상들은 막연하고 두려운 신앙의 대상을 눈에 보이는 '얼굴'로 깎아냈습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표정의 신상들은, 신이 먼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행복을 지켜주는 친근한 동반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 전시 소개문에서
산책로의 신들에게는 저마다 이름과 직분이 있습니다. '밭담머리 차씨할으방'은 밭담에 기대어 오가는 이들에게 무심한 듯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신이고, '꽃핀뜰 대별왕'은 투박한 돌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을 피워 마을의 경사를 돌보는 신입니다. 직함은 신인데 하시는 일은 동네 어른의 일이라, 이름표를 읽다 보면 자꾸 웃음이 납니다. 무서워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반가워서 나는 웃음입니다.

꽃핀뜰 대별왕 — 투박한 돌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을 피워 마을의 경사를 돌보는 신
신들의 산책로
오초량의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억겁의 시간을 견딘 현무암의 신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은 세상의 소음을 통과시키고 고요만 남겨둡니다. 전시 서문은 이 길을 이렇게 안내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산책은 단순히 돌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있던 평범하지만 위대한 신성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 「신들의 산책로, 오초량」 서문에서

창가의 당신(堂神) — 정원을 내다보는 자리
일본식 가옥의 창틀 너머로 정원의 신들을 내다보는 순간이 이 전시의 백미였습니다. 1925년의 집과 조선 이후의 제주 돌과 2026년의 관람객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데, 이상하게도 셋 중 누구도 어색해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골동의 공통점입니다. 어디에 놓여도, 저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굽니다.
실내 — 5백 년을 사이에 둔 철유 두 점
정원이 신들의 자리였다면, 실내에는 도자 두 점을 두었습니다. 하나는 고복희 소장품인 조선 초기 반덤벙 편병. 15세기를 살았던 도공이 찢어진 도자기를 버리는 대신 철유로 메꾸고 다시 구워낸, 수리의 흔적이 아름답게 남은 그릇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대 도공 오자크래프트의 철유 불상. 고아한 미감으로 완성된 오늘의 철유입니다.


조선 초기 반덤벙 편병 — 찢어진 그릇을 철유로 메꿔 구워낸 15세기 도공의 손 · 오자크래프트의 철유 불상 — 5백 년 뒤, 같은 유약
5백 년의 시차를 둔 두 사람이 같은 유약으로 나눈 대화가 오초량에서 의미 있게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15세기의 도공은 깨진 것을 살리는 데 철유를 썼고, 21세기의 도공은 부처의 얼굴을 빚는 데 철유를 씁니다. 고치는 손과 비는 마음 — 결국 같은 곳을 향해 있는 셈입니다.
위로 — 당신 곁의 당신
석 달의 전시가 끝나고 신들은 다시 짐을 꾸렸지만, 오초량이 처음 건넨 말 하나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위로. 골동이 왜 지금 젊은 세대의 마음을 붙잡는지에 대한 가장 짧은 대답이 아닐까 합니다. 완벽한 새것들 사이에서, 수백 년을 버텨온 투박한 얼굴 하나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됩니다.
오초량에서 만난 당신(堂神)의 미소를 당신(You)의 일상으로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신은 멀리 있지 않고, 언제나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곁에 앉아 당신의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 — 「신들의 산책로, 오초량」 서문에서

전시 서문 「신들의 산책로, 오초량」
전시 정보
《젊은골동, 오초량 Young Antiques, Ochoryang》
2026. 4. 23(목) – 7. 5(일) · 오초량(부산 동구 초량동 81-1,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349호)
고복희 출품: 제주 무신(당신堂神)상 설치 「신들의 산책로」, 조선 초기 반덤벙 편병, 오자크래프트 철유 불상
기록 · 사진: 고복희 — 관련 소식: 오초량 소개글 · 고복희 소개글 · 당신상 이야기. 이 전시는 중앙SUNDAY, 부산일보, 월간도예에 소개되었습니다.
관련 콘텐츠

2026년 7월 20일
나의 이름은 계룡산
계룡산 분청의 온전한 스펙트럼을 펼치는 전시, 고복희에서. 상감·인화·귀얄부터 백자·흑유, 가마터의 실패작과 도편, 환수 유물과 1920년대 발굴조사서 원본까지. 2026.7.25–8.2.

2026년 6월 28일
쟁이상점 : 은성민
은성민과 함께하는 고복희 쟁이상점 — 조선 백자·분청 도자전. 2026.06.29–07.04, 답십리 소품상점.

2025년 12월 6일
미미회(美味會) 제1회 골동살롱 — 레반다빌라 × 고복희
골동에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맛(美味)'이 있습니다. 고복희와 레반다빌라가 결성한 미미회의 첫 살롱 — 엄선한 빈티지 가구와 조선 목기, 별주 인센스 홀더를 한 공간에 모았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2025.12.6–14.

2025년 9월 4일
형.심 (形心) — 르모듈러 × 고복희
"형태는 영혼을 따른다" — 샤를로트 페리앙의 말에서 출발해, 프랑스 모던 건축 거장들의 가구와 조선의 기물을 한 공간에 놓는 전시. 연남동 르모듈러 사옥, 2025.9.4–9.13.